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현구 임나일본부설 주장 날조 사건 (문단 편집) === 김현구는 '천황가가 백제왕가의 시조라고 주장'했다는 왜곡 === >①「그러나 지진원사건이 발생하자 백제에서는 461년 왕녀 대신 개로왕의 동생 곤지를 필두로 의다랑, 마나군, 사아군 등 백제 왕족들을 보내기 시작한다……야마또정권은 직지가 귀국하기에 앞서 그를 일본 여인과 혼인을 맺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동성왕이나 무령왕의 부인도 일본 여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백제 왕가에도 일본 천황가의 피가 수혈되기 시작한 셈이다(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186~188쪽)」 >②“백제왕이 비다쯔(민달)천황의 손자라면 백제왕들이 일본천황의 자손이라는 이야기는 되지만 일본 천황가가 백제인이라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문면(文面)만으로는 천황가가 백제인이라는 결론을 끌어낼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반대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들이 ‘일본 천황가는 백제인들이었던 모양’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김현구, 『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 26쪽)” 글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냥 '''서로 혼인해서 피가 섞였다는 주장뿐'''이다. '''시조라는 말은 단 한마디도 없다.''' 그러긴커녕 오히려 천황이 백제의 자손이라 주장한다. >일본서기에는 부레쯔천황이 죽고 후사가 없어서 적당한 사람을 찾다가 아버지가 16대 오오진천황의 5대손이고 어머니가 11대 스이닌천황의 7대손인 케이따이를 옹립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케이따이천황 아버지의 5대조로 되어 있는 16대 오오진천황은 두 번째 왕조의 천황이고 어머니의 7대조로 되어 있는 11대 스이닌천황은 첫 번째 왕조의 천황이다. 따라서 일부 학계에서는 케이따이천황의 출신이 불분명하므로 그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부모를 이전 두 왕조 천황들의 자손으로 하는 계보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냈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케이따이천황의 ‘케이따이’라는 말 자체가 새로이 왕조를 계승했다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무령왕이 ‘남동생 왕’이라고 칭한 일본천황이 케이따이천황이 틀림없다면 케이따이천황이야말로 행방을 알 수 없는 곤지의 세 아들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p.190~191 백제왕조의 시조를 왜라고 하긴 커녕 대놓고 [[천황]]의 백제의 자손이라 주장했는데 이런 구라를 친 것. 일본인과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일본인이 시조"라는 논리는, 유전학적으로 따지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괴논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